한가위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물론 교무금도 많이 내고 미사도 자주 봉헌하면서 예물을 많이 바치라는 뜻은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라는 말씀이지요.
루카 복음 12장에는 재산에 관련된 여러 말씀들이 담겨 있습니다.
탐욕을 경계하라는 말씀에 이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소개되고, 33절에는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에 담긴 의미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라는 뜻임이 밝혀집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고(12,21 참조),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기보다 하느님 나라를 찾는 사람입니다(12,22-32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런 이들에게 당신 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만 재산을 쌓아 둘 뿐,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눔으로써 하늘에 보물을 마련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재산은 영원한 생명은커녕 육체적인 생명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은 사나 죽으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한 해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날이 바로 오늘, 한가위이지요.
농사를 짓지 않는 이들에게도 한가위는 풍성한 날이고, 가진 것이 넉넉지 않아도 음식을 장만해야 할 것 같은 날입니다.
그러나 이런 날일수록 가난한 이들은 더욱 외롭기만 합니다.
넉넉한 이들끼리 선물을 주고받기보다는, 이 한가위가 더욱 허전한 이들, 소외된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순교자 성월

순교성인 103위 중 33위가 9월에 순교합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고 정하상(바오로) 역시 22일 서소문밖 형장에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런 연유로 한국교회는 9월이 되면 순교자를 기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1925년 7월 5일 79분이 복자품을 받습니다. 한국교회는 9월 26일을 축일로 정하고 9월을 복자성월로 지내게 했습니다. 1984년 5월 6일 103위가 성인품을 받자 ‘순교자성월’로 명칭을 바꿨으며 축일도 9월 26일에서 9월 20일로 옮겼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한국주교회의 교포사목 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미국의 한인성당은 118개입니다. 등록된 성당에서 한국 순교자와 연관된 이름은 56개였습니다. 절반이 성당이름으로 순교자를 택한 것입니다. 24개 성당이 St. Andrew Kim Catholic Church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성인 겸 성당 이름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미주가톨릭신문 <사제일기> 중에서

큰 나무는 뿌리가 깊다

큰 나무는 뿌리가 깊다.

깊이 없는 높이는 위태롭다.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들, 프란치스코, 간디, 마틴 루터 킹 등

이 모두 영적으로 뿌리가 깊은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뿌리가 깊지 못하면,

남들이 자기 정체를 결정하게 놔두기 쉽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에 매달리면 참 자기로 살 수가 없다.

남들의 견해에 집착할수록 그만큼,

자기가 얼마나 피상적인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 발로 설 자리가 없다.

우리는 사람들의 아첨과 칭찬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에 뿌리를 깊게 내린 사람은

세상의 칭찬에 매달리지 않고서 그것들을 즐길 수 있다.

 

-헨리 나우웬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

 

벌집은 정육각형입니다. 그런데 왜 정육각형인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헝가리 수학자 라슬로 페예시 토트(1915~2005)입니다.

그는 최소 재료로 최대면적 그릇을 만들려면 육각형이 되어야 한다는 걸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육각형일 때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넓은 면적의 용기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요즘은 이 원리를 이용해 축구 골네트도 육각형 그물코라 합니다. 사각 그물코보다 재료가 덜 들기 때문이라 합니다.

육각형 벌집에는 벌집 무게의 30배까지 꿀이 저장될 수 있습니다. 밖으로 흐르는 걸 막기 위해 기울기는 9-14도로 되어 있습니다. 벌집을 지을 땐 수천 마리의 벌들이 흩어져 각자 맡은 부분을 만듭니다. 그리곤 모두 모아 집을 완성시킵니다. 그런데 접합 부분을 보면 놀랍게도 한 치의 빈틈이나 어긋남도 없다고 합니다. 마치 한 마리의 벌이 만든 것과 같다는 겁니다.

벌들은 이 모든 걸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요? 자연의 신비일 뿐입니다. 사람 역시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 몸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미래를 희망하며 기다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희망은 숫자와 무관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숫자에 매이게 합니다. 교회도 모르는 새 숫자를 찾고 있습니다. 신자수가 얼마며 헌금이 얼마며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사람이 많다고 은총이 많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중요합니다. 은총은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한 ‘정성’에 있습니다.

숫자에 매이지 않는 것이 희망의 첫 훈련입니다. 숫자에 매달릴수록 삶은 초라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홉이 되면 열을 바라고 열이 되면 백에 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백 뒤에는 천이 있고 만과 억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는지요? 생각하면 숨이 가빠집니다.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면 숫자는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드리면 더 큰 숫자는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다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의 전부입니다. 일,백,천,만,억,조,경,해,양,구,간,정,재,극,항하사,아승기,나유타,불가사의,무량대수

— 미주가톨릭신문 <사제일기> 중에서

 

북미주 한인 가톨릭 공동체 설립 50주년 기도문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

한국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신앙의 유산을 가슴에 품고

이 땅 북미주에 주님의 성전을 마련하여

감사와 찬미를 드린 지 50년이 되었나이다.

 

이민자의 고달픔과 긴박한 삶의 절실함 속에서도

신실하고 순박한 마음으로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용서하며

오늘까지 신앙 공동체를 지켜 올 수 있음에

감사드리나이다.

 

저희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일치된 마음으로 희년의 축제에 참여하는

은총의 시간을 허락하시고,

이 축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참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해 주소서.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주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세상 끝날까지 타오르게 하시며,

성모님의 인도로 저희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국 순교자의 신앙 유산을

당당히 물려줄 수 있는

북미주 한인 가톨릭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