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은 정육각형입니다. 그런데 왜 정육각형인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헝가리 수학자 라슬로 페예시 토트(1915~2005)입니다.

그는 최소 재료로 최대면적 그릇을 만들려면 육각형이 되어야 한다는 걸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육각형일 때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넓은 면적의 용기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요즘은 이 원리를 이용해 축구 골네트도 육각형 그물코라 합니다. 사각 그물코보다 재료가 덜 들기 때문이라 합니다.

육각형 벌집에는 벌집 무게의 30배까지 꿀이 저장될 수 있습니다. 밖으로 흐르는 걸 막기 위해 기울기는 9-14도로 되어 있습니다. 벌집을 지을 땐 수천 마리의 벌들이 흩어져 각자 맡은 부분을 만듭니다. 그리곤 모두 모아 집을 완성시킵니다. 그런데 접합 부분을 보면 놀랍게도 한 치의 빈틈이나 어긋남도 없다고 합니다. 마치 한 마리의 벌이 만든 것과 같다는 겁니다.

벌들은 이 모든 걸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요? 자연의 신비일 뿐입니다. 사람 역시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 몸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미래를 희망하며 기다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희망은 숫자와 무관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숫자에 매이게 합니다. 교회도 모르는 새 숫자를 찾고 있습니다. 신자수가 얼마며 헌금이 얼마며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사람이 많다고 은총이 많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중요합니다. 은총은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한 ‘정성’에 있습니다.

숫자에 매이지 않는 것이 희망의 첫 훈련입니다. 숫자에 매달릴수록 삶은 초라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홉이 되면 열을 바라고 열이 되면 백에 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백 뒤에는 천이 있고 만과 억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는지요? 생각하면 숨이 가빠집니다.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면 숫자는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드리면 더 큰 숫자는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다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의 전부입니다. 일,백,천,만,억,조,경,해,양,구,간,정,재,극,항하사,아승기,나유타,불가사의,무량대수

— 미주가톨릭신문 <사제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