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산 호렙 동굴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그는 강한 바람과 지진, 불길이 지난 다음에야 하느님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잔잔하고 조용하게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들어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왔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불타는 엘리야는 부드러운 미풍과 같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찬 바람에 맞서 배를 몰고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는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신적 현존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동포인 유다인들이 그리스도를 몰라보는 것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과 영광을 받았음에도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을 믿게 할 요란한 표징과 기적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가 역경 중에 헤맬 때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존재 자체이신 그분께서는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침묵 중에 믿고 기다릴 때, 그분께서는 이미 우리 곁에 계십니다. 잔잔한 미풍처럼 그분께서는 우리의 고통스러운 실존을 감싸 안고 위로해 주십니다.

사목위원 연수를 다녀와서

맑고 쾌청한 토요일 아침 벨플라워에 위치한 LA 한국 순교자 영성센터에 신부님, 수녀님, 사목위원들이 모여 10시 말씀의 전례로 연수를 시작하였습니다.

성가와 말씀, 신부님의 기도로 주님께로 마음을 모으고, 주님 안에 하나 됨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한국의 소록도에서 43년을 봉사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신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하였습니다.

그분들은 병마와 편견으로 소외된 소록도 한센병 환우들에게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이었습니다. 봉사의 열정, 끈기, 강인함, 겸손함을 모두 갖춘 그분들의 삶을 보며 우리가 봉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결같이 봉사를 통해 오히려 ‘기쁨과 평화’를 얻으셨다는 말씀은 우리도 봉사를 통해 기쁨을 누리는 생활이 되리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살아오신 분이 그분들을 ‘사랑이 의인화된 분들’이라고 표현하셨는데,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의 고통에서 신앙을 지키는 순교만큼이나 평생을 바쳐 봉사한 그분들의 삶 또한 또 다른 순교가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오후에는 그룹원들과의 나눔과 신부님의 강의로 봉사의 의미와 봉사자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황님의 ‘주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말씀처럼 봉사자는 작은 일에도 충실하고, 씨앗이 되는 섬기는 삶, 일회성이 아닌 전문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봉사에 임해야 됨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목위원의 십계명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봉사의 열정이 끓어오르고, 어떻게 봉사를 실행해야 되는지 계획과 기도의 사목위원이 될 것을 다짐하며 뜨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연수를 통해서 신부님의 열정을 느꼈습니다.

그 열정이 저희 사목위원들과 교우분들에게 전해지고 바실 성당 모든 교우들이 ‘기도하고 친교하며 하나 되는 공동체’로 발전해 가기를 기도드립니다.

홍보분과장 유승목 요한

가라지와 밀

오늘 복음의 비유를 보면 종들은 밀밭에 난 가라지를 뽑아 버리겠다고 하고,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지 모르니 수확 때까지 두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에서 종과 주인의 시각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종들은 가라지가 밀을 해칠까 걱정되어 가라지를 뽑으려 하였지요. 반면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 밀이 상할까 걱정되어 뽑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듯이 우리 사회도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가라지는 어느 특정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누구에게나 밀과 같은 요소가 있듯이, 가라지 같은 요소도 있지 않습니까? 가라지는 자신의 단점이나 부정적인 모습을 뜻합니다. 그런 가라지를 예수님께서는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결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라지가 마치 가시처럼 되어 자신을 찌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비난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점이 있을수록 자신과 화해해야 합니다.

단점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숨어 있는 자신의 가라지를 찾아내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인정함으로써 주님의 도움을 더욱 청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안에 심어진 가라지를 모두 뽑아 주실 것입니다. 가라지를 인정하고, 치유해 나가며, 더불어 선하고 좋은 면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이지요.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으로 씨를 뿌렸다고 합니다.첫째는 농부가 직접 밭에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또한, 노새를 이용해 씨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씨앗이 담긴 자루를 노새의 등에 얹고, 그 자루 한 귀퉁이를 조금 찢어 구멍을 냅니다. 그러면 노새가 밭을 걸어가는 동안 씨가 저절로 자루 속에서 흘러나와, 밭에 뿌려지게 되지요.

씨앗이 떨어진 곳에 따라 결실이 다르듯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말씀이 맺는 열매는 천차만별이라 하겠습니다.먼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내릴 수 없지요. 따라서 길과 같은 마음은 편견이나 선입관을 갖고 남을 대하는 이들이라 하겠습니다.돌밭과 같은 마음은 쉽게 달궈졌다가 쉽게 식는 마음입니다.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엇을 계획한 뒤, 어떤 위기가 찾아오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열정을 다해 하느님의 길을 걷다가도 시련이 닥치면 이내 하느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은 세상 여러 일에 너무 많은 관심을 두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실천하는 신앙인을 뜻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늘 마음을 여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안식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시며 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방법이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 간에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제들이나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느님 계명을 완벽하게 지키려고 노력하였지요. 바로 이 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계명만을 바라보다 보니 그만 계명 자체에 얽매이게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식일 준수입니다. 유다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을 맞아 일하지 않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적에게 학살당하기도 하였습니다(2마카 5,25-26 참조). 안식일에는 불을 붙이거나 끄지도 못하고, 빵 굽기, 바느질마저 금지하였기에 가난한 이들에게는 너무나 큰 멍에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이 어떤 분으로 보였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힘들고 무거운 율법의 멍에를 풀어 주신 것입니다. 지킬 수 없는 형식적인 계명 때문에 하느님을 멀리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돌려 주셨지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형식보다 근본정신을 강조하심으로써 하느님을 믿는 것을 참으로 쉽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