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해야’ 하나요? ”

주일(主日), 곧 주님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첫날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첫째가는 축일입니다. 주일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을 기념하며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로 세상이 구원되고 인류가 새롭게 되기 시작한 날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최상의 경배를 드리는 성찬례를 중심으로 무엇보다 기도로써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불멸의 태양으로 여겨 주간 첫째 날의 명칭인 일요일(본래 태양을 숭배하던 날)을 ‘주님의 날’이라고 했고, 유다인들의 안식일(오늘날의 토요일) 다음 날인 주간 첫째 날에 함께 모여 공적 예배를 드리며 거룩하게 지냈습니다. 따라서 주일은 초대 교회 때부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으뜸의 날로 여겨왔고,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주일의 첫 번째 목적은 주님을 섬기기 위한 것(미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이 바로 미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일에 일해야 하는 경우에는 토요일 저녁 특전미사에 참여해도 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1월 27일]

도둑과 성자

어떤 형제가 배를 훔치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분노한 주민들이 형제들의 목을 매려 하자 촌장이 그들을 막으며 소리쳤다. 

“비록 저들이 악인일지라도 우리 마음대로 목숨을 빼앗을 순 없소. 대신 도둑질을 했다는 표시를 새겨 놓으면 평생 어딜 가도 편히 살 수 없을 것이오.” 

사람들은 촌장의 말대로 형제의 이마에 커다랗게 ‘ST(Ship Thief : 배 도둑)’라고 새겨 넣었다. 그 뒤 사람들은 그들을 볼 때마다 “저기 ST가 지나간다. 저 글자가 무슨 뜻인 줄 아니? 바로 배 도둑이라는 뜻이야. 하하하!” 하고 놀려댔다. 견디다 못한 형은 밤을 틈타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이마에 새긴 글자에 대해 묻는 사람들 때문에 편할 날이 없었다. 결국 형은 좌절감에 빠져 인적이 드문 산골에서 비참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동생은 끝까지 마을에 남기로 하였다. ‘어디로 간들 내 죄를 피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이곳에 남아 죄과를 달게 치르리라.’ 동생은 사람들이 내뱉는 온갖 비난을 묵묵히 견뎠다. 세월은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동생에 대한 비난은 점차 줄어들었고 묵묵히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칭찬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우연히 그 마을을 지나다가 한 노인의 이마에 새겨진 글자를 보게 되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나그네는 길을 가던 이에게 그 노인의 사연을 물었다. “하도 오래된 이야기라 잘은 모르지만 저 분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저 분처럼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요. 아마 저 이마에 새겨진 글씨는 ‘성자(Saint)’의 약자임이 틀림없을 겁니다.”

-영국 웨일즈의 전설

슈바이처의 생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1875∼1965)는 모교인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청강생으로 의학을 공부한 후 1913년에 적도 아프리카(지금의 가봉공화국)로 떠났습니다. 

슈바이쳐는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그에게서 가장 중요한 삶 중에서 3가지를 포기했습니다. 첫째는 심취했던 바하의 음악을 포기했고, 두 번째는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대학교수직을 포기했었고, 세 번째는 풍요롭고 안락한 자신의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한 후 적도 아프리카의 오고웨 강변 랑바레네에 병원을 설립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을 위해 병을 고쳐주고 영적인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슈바이쳐의 희생과 사랑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큰 것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슈바이쳐는 그토록 심취했던 바하의 음악을 포기했었지만 바하 협회는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연주회를 아프리카에서 열어주었고 대형 오르간을 선물했습니다. 또한 존경과 명예가 뒤따르는 교수직을 포기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를 평생 동안 강의할 만한 강의 시간을 단 일년 동안에 모두 허락하셨습니다. 

안식년을 맞아 귀국한 그에게 대학마다 앞 다투어 초청해서 그의 강의를 듣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었지만 그가 저술한 자서전을 비롯한 많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자신의 선택한 삶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서 그 마음에 충만한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에 관심을 두지만 주님께서는 얼마나 많이 비워졌는지에 관심을 두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깨끗한 빈 그릇이 되어질 때 주님은 우릴 통해 주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주 호식 바드리시오 신부 글 중 발췌

마지막 깨달음

다음의 글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 중에서-발췌

 

우리도 지금 성당에서 진행되는 구호들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내가 먼저 세례명을 부르고, 내가 먼저 가족에게 대화하는 솔선수범이 우리 공동체를 환하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시작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먼저 실천할 때, ‘기도안에서 친교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유 승목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