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느님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삶 안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서로 사랑해서 하나가 된 부부도 계속 하나가 되어 그 행복을 유지하며 살려면 수많은 수고를 겪고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강력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수많은 갈등과 질곡을 넘어서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다른 위격을 지니시면서도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시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하신다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이면서도 인간의 머리로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입니다.

세 분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라는 존재론적 모순의 논리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비는 존재론이나 논리학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끝없는 애정으로 성자를 바라보시고, 성자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향해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보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분 사이에 흐르는 그 뜨거운 사랑 자체가 바로 성령이시라는 어느 신부님의 설명이, 세 분이 동시에 한 분이라는 이 교리를 가슴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이 가장 뜨거운 신비에 참여하는 행복한 존재입니다. 이로써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와 사랑에 푹 빠진 기쁨의 잔치가 될 것입니다

 

평화의 선물

오순절이 되었을 때, 거센 바람처럼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불꽃처럼 우리를 타오르게 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제자들에게 보내 주신 성령께서는, 흩어진 백성들을 모으시고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세우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제도와 율법에 기초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새로운 생명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두려움에 갇혀 있던 제자들을 세상으로 뛰쳐나가게 하시고, 교회에 필요한 은총을 베푸시어 교회가 세상 안에서 활짝 꽃피게 하십니다.

온 세상에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도록 언어의 은사를 주시고, 어떤 박해나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순교자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분의 증인이 되어 그들이 보고 전해 들은 것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성령으로부터 생명력을 받아 오늘도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 성령의 생명력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평화입니다.

싸우지 않고 전쟁을 치르지 않는 소극적 의미의 평화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쁨과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세상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모든 죄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화해와 일치의 평화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늘은 두 가지 표상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볼 때, 하늘은 나의 진심과 믿음을 확인해 주고 지켜 주는 든든한 보루가 됩니다.

또한 “하늘이 무섭지 않는가!”, “천벌을 받을”이란 표현에서, 하늘은 두렵고 공평하며 정의로우신 하느님을 고백하게 해 줍니다. 이렇듯 하늘은 경외감과 거룩함, 자비와 정의를 동시에 깨닫게 해 주는 가장 적절한 종교적 표상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간 제자들과 만나시며, 그들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전할 하느님 나라의 신비와 복음의 기쁨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든 민족들에게로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깨닫게 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신비, 그리고 협조자이신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가르칠 것을 명하십니다. 하늘로 오르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은 넋을 놓고 쳐다봅니다. 성령을 기다리는 남은 기간 동안에도 불안과 의혹으로 다락방에 숨어 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힘이 된 예수님의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우리가 가끔 인생에서 불안해지는 것은 내 곁에 아무도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외감과 외로움 때문입니다. 우리의 참평화는 내 곁에서 누군가가 나를 든든히 지켜 주고 있다는 확신에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영광의 자리인 하늘로 오르심으로써, 하늘은 이제 우리 영혼을 지켜 주고 쉬게 해 주는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땅에 매여 사는 인생이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늘을 향해 삽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을 잊고 사는 이들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곁에 머물며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소명입니다.

성령의 열매

과거에는 ‘성령’을 ‘성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초월적 신의 의미보다는 ‘바람, 숨결, 기운’과 같은 영의 활동이 성경에서 증언하는 보호자, 협력자로서 우리 곁에 숨결처럼 머무시는 예수님의 영을 적절하게 표현하기에 지금은 ‘성령’으로 부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하느님의 살아 계신 영이십니다.

초기 제자들의 복음 선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병자들의 치유와 같은 표징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징을 본 것만으로는 믿음을 얻지 못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말씀은, 표징을 보고 그저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내적인 회심과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용기를 성령께서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할 수 있는 증언의 힘은, 지혜의 성령께 의탁하고, 기도의 응답에 따라 세상의 거짓과 위선을 식별해 내고, 예수님 말씀에 담긴 진리와 선을 담대히 따른 체험에서 나옵니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결코 쉽게 믿음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을 개인적인 은사의 원리로 여깁니다. 그러나 교회는 개별 신자가 받은 성령의 은사가 언제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에, 누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 사람의 은사는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거짓 은사라고 가르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참조).

그 밖의 것들은 악에서 나온 것임을 명심합시다

Letter To Jesus

 

Dear Jesus,

Thank you for everything you have done for me. I have learned so much about your love at Sunday School. I will love others just like you love me.

I met great friends and awesome teachers at church this year. Also Father Augustine and Sister Hostin are very kind. Thank you for having me to meet these wonderful people.

I will keep promises by going to church, being nice to everyone around me, eating healthy food and loving everyone.

– Love,

Hannah Julia

 

*성바실 주일학교의 Bang Hannah 양이 지난 5월7일 첫 영성체 후 예수님께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