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자캐오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며 마침내 완성하고자 하시는 구원 업적의 예표와도 같이 묘사됩니다.

유다인들의 선민의식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율법 규정에 따라 철저하게 지켜지고 강조되었습니다.

율법에 어긋나는 삶을 살거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은 아예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하느님의 구원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자캐오가 로마의 지배하에 세금 징수 업무를 위임받아 제국의 압제자 노릇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받은 멸시와 비난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민족에게서 외면당한 자캐오라고 해서 위대한 예언자, 메시아로 칭송받던 예수님을 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먹고살려고 지배 세력에 협력하고 있지만, 그 불편한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냥 예수님을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무화과나무에 올라 자신을 쳐다보는 자캐오의 속마음을 읽어 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내려오라’는 말 속에는 그의 욕심, 자책감, 상처를 버리라는 요청이 들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집에 머물기까지 하십니다. 구원은 바로 이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했듯이, 그토록 소중한 재산을 내어놓겠다고 선언하는 자캐오의 마음에는 주님의 ‘불멸의 영’이 살아 있었고, 그 영을 일으켜 주신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오늘’ 구원을 선포하고,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언하십니다.

자비는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선 하느님의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