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거룩함과 완전함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거룩함과 완전함을 갖추라고 하십니다. 속물근성이 가득한 내 모습과, 늘 바퀴 하나 빠진 존재 같은 내가 어떻게 거룩하고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거룩하고 완전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 살면 ‘하느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란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지혜를 찾고, 꾀를 부려 세상을 살기 때문이죠. 내가 이룬 성공, 내 능력에 대한 자랑과 내가 알고 지내는 좋은 인맥이 나를 성공시켜 줄 것이란 헛된 희망을 갖고 삽니다.

바오로 사도의 지적대로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는 말씀이 공감 가는 시대입니다. 유다인들은 레위기의 가르침대로, 자기 동족을 미워하지 않고,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는 것이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족은 서로 돕고 질책하며 격려해서 공존하는 삶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웃 사랑은 이민족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 갖는 거룩함과 완전함을 자신들만의 성공에 가두려는 숨겨진 욕망의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이웃 사랑의 길을 일깨워 주십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결국 하느님의 거룩함과 완전함의 방식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고 걸림돌 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비를 내려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직접 하느님 방식으로 사랑해 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거룩함과 완전함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