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역사적인 존재로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날마다 오늘의 삶이 어제의 결과이고, 또 오늘 삶의 결실이 내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우리 안에 엄습합니다.

내가 나이 들어서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을까? 내가 병들었을 때 누가 나를 챙겨 줄까?

그리고 이러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죽음에 대해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시각과 감정, 또는 두려움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까지 이어지지만,

사실 우리는 그 이후를 경험해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곳의 셈법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습관적으로 이 세상의 삶에 비추어 하늘나라를 그려 보지만,

그곳의 시간은 여기와 어떻게 다른지,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만나게 될지,

하느님께서는 나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 주실지, 두려운 마음을 떨치지 못합니다.

하늘나라의 모습은 이 세상의 셈법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참여한 이들은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그리고 더 이상 죽는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알려 주시며,

다시 우리의 시선을 ‘오늘’로 돌려주십니다.

오늘을 성실히 살며,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면 부활하신 그분께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이고

이 확신으로부터 신앙인은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