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정의와 역사
-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 “모든 전례는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의 행위인 까닭에, 가장 우월적인 거룩한 행위이며, 그 효과에 있어서 성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도 이와 같은 자리 및 같은 비중을 차지할 수 없다.”
- “전례는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업적을 거룩한 표지를 통해 거행함으로써 하느님을 경배하고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행위이다.”
전례의 방향성
- 모든 전례에는 두 개의 방향성이 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의 말씀과 은총을 하사하시고, 은총에 감싸인 인간은 하느님께 제사와 기도로써 감사와 찬미의 경배를 드림.
- 전례가 거행될 때, 이 두 방향성은 늘 순환하게 된다.
- 따라서 경신례에는 성화와 예식이 나란히 위치하게 된다.
- 이 두 방향성의 교차점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러한 정신을 무시하면 전례는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전례의 3중 구조
- 전례는 지금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능력 (성령)을 청함으로써 ‘과거를 되살려’,
- 그 구원 사건을 지금 여기 우리의 것이 되게 ‘현재화’하며,
- 미래의 완전한 천상제례를 ‘미리 앞당기고 성취’시켜 주는 것이다.
- 즉, ‘과거 – 현재 – 미래’가 한 장소와 시간 안에 함축되어 하느님의 구원업적이 ‘거행’되는 것이 전례이다.
- 따라서 전례 안에는 하느님이 현존하신다.
전례의 올바른 이해 (하느님의 중재자 (Mediator Dei)의 이해)
-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이중의 위탁을 받았으며,
- 그 하나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사명이고,
- 또 하나는 그 ‘기쁜 소식’을 받아들여, 믿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께 최상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것이다.
-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을 그의 지체로 하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완전한 공적 예배이다.” (MD 20)
-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위임 받은 임무에 충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특히 거룩한 전례를 통하여 계속하는 것이다.
- 다음의 4가지 조건이 갖추어야 전례가 된다: 첫째,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하는 행위, 둘째, 적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이나 교회의 이름으로 천상 성부께 드리는 예배, 셋째, 교회의 권위로부터 합법적으로 위임 받은 교직자가 거행해야 함., 넷째, 교황청으로부터 인준된 전례서를 가지고 해야 함이며, 이상 네 가지 조건을 구비하고 있지 않은 예배 행위는 신심 행사임.
-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 직무의 수행이며,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의 실현이고
- 전례의 목적은 하느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고, 인간을 성화 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면에서 인간의 행위이며,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면에서는 하느님의 행위인 것이다.
- 또한 전례는 거룩한 표지 (Signasacra)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 하느님 백성인 전체 교회의 공적인 행위이다.
전례 동작
- 전례는 인간의 내적인 자세와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동작이며 행위이다.
- 전례 동작에는 행동 외에도 보는 것과 침묵까지도 포함한다.
- 전례는 하느님의 구원을 실현시켜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성화와 하느님께 대한 공경을 표현하는 행위이기에 전례 동작은 전례의 이러한 성화와 공경의 목적과 기능에 맞아야 한다.
- 표현 방법 자체도 크게는 나라마다, 작게는 개인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한, 하느님의 백성이 같은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 따라서 전례동작은 다양성 속에 일치를 드러내는 것 이어야 한다.
[서는 자세]
존경을 표시하는 자세: 사제나 부제가 복음을 봉독을 할 때에는,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심을 드러내기 때문에, 하느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서서 경청한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스라엘 백성도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서 있었다 (탈출 20,21; 느헤미아 8,5; 에제키엘 2,1; 다니엘 10,11).
이러한 존경의 자세는 하느님을 대리하여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에게도 드러난다. 그래서 예식의 처음과 끝에 주례가 입당하고 퇴장하면 신자들은 일어선다.
하느님께 대한 존경의 자세는 누구보다도 제단 봉사자들, 특히 사제에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는 자세는 제단 봉사자들의 기본 자세이다.
가장 보편적인 기도 자세: 성서에 보면 기도를 할 때, 흔히 서서 하였다 (마르코 11,25). 그리고 카타콤바의 벽화나 조각, 초세기의 저서들을 보면, 그 당시의 신자들은 흔히 서서 기도하였다. 니체아 공의회는 서서 기도하는 부분을 법으로 정하기도 하였다.
부활과 기쁨의 자세: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일어나셨으며, 우리도 그분을 통화여 부활하여 일어났다. 초세기부터 서는 자세가 부활과 기쁨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그런 의미로 부활시기와 주일에는 서서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삼종기도 등).
[앉는 자세]
인간은 몸의 구조상 오래 서 있거나 끓어 있으면 쉽게 피로를 느끼는 반면, 앉으면 몸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즉 올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다는 것은 바른 몸 가짐을 나타내는 것일 뿐 아니라 정성이 담긴 기대와 주의력으로 가득 차 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전례에서는 가르치거나 경청의 자세로 앉는 자세를 취한다.
가르치거나 훈계하는 자세: 주교는 서품, 견진 예식, 미사 등, 각종 예식 중의 훈화 부분에 흔히 앉아서 한다.
경청하는 자세: 전례 중에 복음을 제외하고, 성서를 봉독할 때에나 사제의 강론 때에 신자들은 앉아서 경청한다. 그리고 성서 봉독 후나 영성체 후에도 모든 신자들은 앉아서 침묵 중에 주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고요한 가운데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무릎 꿇음]
보편적인 경배 및 기도 자세: 두 발로 서는 존재인 인간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고 적게 만드는 겸손의 몸짓이자 상대방에게는 존경을 드러내는 동작이나 자세이다. 하느님은 더 없이 높으시고 거룩하시며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인간이 그 분 앞에 나설 때에는 자연히 경배의 자세로 무릎을 꿇게 된다. 이러한 자세는 이스라엘의 경배 및 기도 자세였으며, 예수께서도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 무릎을 꿇으셨다. 그 밖에 사도행전은 스테파노 (7,60), 베드로 (20,36), 띠로의 신자들 (21,5)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 자세를 도입하여 하느님과 그분의 현존 표시인 성체, 제대, 십자가, 복음서 등과 몇몇 기도문 (성탄과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의 신앙고백 중), 수난기 봉독 중의 주님의 운명 대목 등에서 무릎을 꿇는다.
뉘우침을 드러내는 표지의 자세: 인간이 자신의 죄 많은 처지를 생각하고 뉘우침을 드러내는 표시이다. 이런 면에서는 부활과 기쁨을 드러내는 서는 자세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간청의 자세: 인간이 겸손 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써 간절한 원의를 드러낸다. 피정이나 특별기도 행사를 시작할 때 외는 “임하소서, 성령이여 (Veni Creator Spiritus)”의 첫 귀절도 그런 의미에서 무릎을 꿇고 바친다. 또 성 금요일의 장엄 기도 때에 무릎을 꿇는 것도 같은 뜻을 지닌다. 그런데 한 쪽 무릎을 꿇는 것은 두 무릎을 꿇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동작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 주교회의에서는 이러한 동작을 고개를 숙이는 동작으로 바꾸었고, 오늘날 우리는 성체, 제대, 십자가, 복음서 등에 고개를 숙이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힘]
이 동작은 동서를 막론하고 인사 때에 흔히 쓰이는 존경의 표시이다. 그 의미도 무릎을 꿇는 자세와 대동소이 하게 심도의 강약은 굽히는 행위의 심도로 표현되다. 전례에는 한쪽 무릎을 꿇는 동작보다 먼저 들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미사 때 예물을 받아 드리기를 청하는 사제의 기도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사제의 영성체 준비기도, 시작 예식과 마침 예식 때의 제대에 대한 인사 등에 이 동작을 취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쪽 무릎을 꿇거나 입맞추는 풍습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동작을 모두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히는 동작, 곧 작은 절이나 큰 절로 통일시켰다. 그래서 제대나 복음서에 입맞춤, 성체 성혈 거양 후나 사제의 영성체 전에 무릎을 꿇는 동작이 모두 큰 절이나 작은 절로 바뀌었다.
[손을 모음, 올림, 벌림]
손을 모음: 경건, 겸손, 봉헌의 표시이며, 다른 동작 (미사 때 사제가 예물에 대한 축복, 안수 등)을 취하기 위한 준비 자세이기도 하다.
손을 벌림, 올림: 올리는 기도, 간청 등의 자세로 일반적으로 주례자의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 두 손을 높이 펴들고 기도하는 자세는 거의 대부분의 민족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보편적인 기도 자세 중의 하나이다. 성서에서도 이런 기도 자세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손을 펴 드는 자세는 높이 계신 하느님을 향하고 그 분의 도움을 바라는 자세이다.
[안수]
손은 사람이나 사물을 접촉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그래서 안수는 가장 오래된 예배 동작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의 영향을 받아 안수를 하느님의 영, 하느님의 힘, 또는 하느님의 권한을 부여하는 표시로 축성, 축복 등의 예식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견진, 성품, 참회, 병자 도유 등 성사 예식의 핵심 동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행렬]
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함께 걷는 행렬은 공동으로 의지, 소망을 표시하거나, 증거하는 동작이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 소망, 증거, 축제, 환영. 존경. 하느님께 나아 감 등의 의미로 교회 안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교회 박해가 한창이던 초세기에는 이러한 행렬이 장례 행렬 등 일반화된 예식 외에는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그러다 4세기 이후 종교자유가 주어지자 황제나 개선 장군 행렬 등이 교황 및 주교의 입당 및 퇴장 행렬에 서서히 적용되었다. 이 행렬은 차츰 교우들에게도 확산되어 순교자 모지나 기념 성당을 참배할 때 행렬을 이루곤 하였다. 이러한 행렬은 4~6세기에 정착되면서 미사, 성인 유해 운반, 주교 영접, 특별기도, 성체 축일 (14세기 이후)에 시행되었다.
현행 예식에서는 다음의 경우에 행렬을 한다: 성체 행렬, 2월2일의 주님 봉헌 축일 미사 전 빛의 행렬,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입상 행렬, 미사 때의 입당, 복음서 봉독, 예물 봉헌, 영성체 및 퇴장 행렬.
행렬 때에는 일반적으로 동반 성가가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