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셈법은 우리의 세상 셈법과 사뭇 다릅니다. 자본주의 논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정당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경제 정의의 기초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일꾼과 품삯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나중에 와서 적게 일한 일꾼과 먼저 와서 종일 일한 일꾼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는데 이는 우리의 경제 정의와 맞지 않습니다.
비록 포도원 주인과 일꾼이 맺은 계약으로 본다면 같은 품삯을 주는 것이 정당하지만, 먼저 일하러 온 일꾼이 더 많은 품삯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이 이런 우리의 익숙한 경제 정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품삯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양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차별로 느껴지는 품삯일 수 있지만, 하느님께는 같은 무게를 지닌 사랑의 표징입니다. 그 사랑을 더 받고 덜 받는 문제는 하느님의 방식이지 인간의 방식이 아닙니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는 것이 세상의 잣대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고 전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가 곧 자신의 삶이고 죽음이 이득이라는 역설을 말하는 것도 세상의 논리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복음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이유는 먼저 복음을 들은 우리가 선점한 구원의 보증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마음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위함임을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