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사목 계획

2025-2026년 천주교 바실 한인 성당 사목 계획서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마르 10,17-27)

  공관 복음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 신앙의 목표인 구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마지막 제자들의 말과 같이 ‘누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구절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 흐름 안에서 우리는 구원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데, 저는 이 가운데 네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를 앞으로의 4년 동안 우리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 살아보기를 희망합니다.

  1.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
  2.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마르 10,19)
  3.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르 10,21)
  4.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마르 10,27)

 

  올해 우리가 공동체에서 중심을 두고 싶은 주제는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는 어떤 사람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복음 안에서 매우 특별하고도 바람직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이 사람처럼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주기를 청하거나, 또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의 병을 낫게 해 주기를 바라며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우리들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기적이 아닙니다. 그 놀라운 일들은 예수님께서 진짜 보여주시고 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여기 세상 안에 있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복음서의 이 질문에서 우리는 우리 믿음이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찾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을 순수하게 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첫 과제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며 기도하기

  몇 년 전부터 우리 공동체는 저녁 시간에 함께 기도를 바쳐 왔습니다. 또한 본당에는 많은 신심 단체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바칠 때, 가능한 우리와 우리 이웃들, 우리 공동체의 신앙을 위하여 지향을 가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기도 때 ‘사도신경’을 함께 바쳐주시기를 바랍니다. ‘신경’은 우리의 신앙 고백이며, 동시에 신앙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고백하며 기도 드립시다. 

 

평일 미사 참례하기

  본당에 부임하여 제일 먼저 듣게 된 부탁은 토요일 미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코로나 이후 없어진 토요일 아침 미사를 다시 시작해 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이제 코로나 이전에 있었던 좋은 부분들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7월부터 이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이 미사에 대하여 다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미사는 우리 신앙 생활의 중심이며, 정점입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받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가톨릭 교회의 답은 성체성사 안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미사들, 당연히 드려야 할 주일 미사와 함께 우리의 신앙적 열정이 담긴 평일 미사를 위해 노력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아침 시간이 어려우신 분들은 첫 목요일 저녁 미사에 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당과 거리가 있으신 분들은 평일에는 인근 영어 미사를 참례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기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하여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본당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 성경 모임이 있으며, 화요일 저녁과 금요일 오전에 ‘축복받은 성경 읽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 프로그램에 함께 하여주시기를 바라며, 함께 하기가 어려우신 분들도 매일 전례의 독서와 복음을 읽거나, 매일 조금씩 성경을 읽어나가는 습관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구역 반 모임에 참여하여 함께 성경을 읽고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신심 단체 활동 참여하기

  우리 본당에는 레지오 마리아, 파티마의 사도직, 자비 기도, 성령 묵상회의 신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남가주 지역에는 꾸르실료, ME 등의 교육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가르멜 수도회 등의 모임도 있습니다. 이러한 단체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시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르 18,19)의 말씀처럼 기도와 신앙은 공동체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을 보며 배우고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이제는 다시 모이고 만날 때입니다. 본당의 제단체와 여러 신심 활동들에 함께 합시다. 더불어 각 제단체들도 신앙과 공동체라는 기본 방향에 충실하게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르신들의 신앙 활동

  한국과 같이 여기 미국 한인 사회에도 고령화 문제는 중요한 숙제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 바실 성당은 이 지역 어느 한인 성당보다도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는 본당 운영에는 나름 어려운 상황일 지는 몰라도, 신앙의 영역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노인들은 신앙의 모범이면서 증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당의 어르신들을 잘 모시는 것, 특히 어르신들이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올해 11월 위령성월에는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구원”이라는 주제로, 내년 사순시기에는 “어르신들의 신앙”을 주제로 특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신앙 활동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환우 영성체와 병자성사

  또한 아프신 어르신들을 위한 환우 영성체와 삶의 마지막을 하느님 안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자성사와 연령회 활동에 관심을 갖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아프고 움직이기 어려운 시간들은 하느님과 멀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이 더 간절히 필요한 시간입니다. 이러한 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시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야고보 사도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야고 5,14) 그러나 이는 우리 교회와 이웃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루카 복음 5장에서 어느 중풍 병자를 위하여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데려오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모습이 되기 위하여 노력합시다. 내 반원들과 이웃 가운데 아픈 신자들이 있다면 본당으로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혹 그들이 낯선 사람에게 집을 여는 것을 어려워 하신다면 중개 역할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신자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지내신다면 그들에게 종부성사와 임종기도, 그리고 장례 미사 절차를 안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의 노력으로 하늘나라에 간다면 우리는 정말 큰 공덕을 쌓는 것임을 기뻐합시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 5,20)

 

젊은이들의 신앙을 위하여 기도하기

  우리 공동체의 어르신들에게도 청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자손들, 그리고 세상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삶의 중요한 주제들, 특히 신앙의 중요성은 노년의 축복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젊은이들은 마치 루카 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작은 아들처럼 방황을 겪는 때를 지내야만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세상 너머에 있는 하늘나라,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기다리며 기도하여 주십시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신앙의 기쁨이며 희망은 현세가 아니라 하늘나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삶에 있습니다. 우리는 현세의 축복과 물질적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느님께 나왔습니다. 솔로몬이 코헬렛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삶이 허무함을 후회하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희망을 얻기 위하여 노력합시다. 그리고 그 기쁨과 희망이 우리 바실 공동체 안에서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코린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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